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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에서 한식당 20년, 그리고 내가 말아먹은 가게 이야기

싱가폴에 산 지도 이제 거의 20년이다. 처음 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이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때는 한식당이라고 해봐야 딱 두 군데였다. 대장금, 그리고 탄종파가 인터내셔널 빌딩 안에 있던 식당 하나. 그게 다였다. 김치찌개 한 그릇 먹으려면 그 두 곳 중 하나에 가야 했고, 어쩌다 한 번씩 문을 닫기라도 하면 그 주는 그냥 한식 못 먹는 주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싱가폴 사람들한테 “한국 음식”이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김치가 뭔지 설명해야 했고, 삼겹살 구워 먹는다고 하면 신기해했다. 지금이야 오차드 로드 걸어가다 보면 한식당 간판이 몇 개씩 보이고, 젊은 싱가폴 친구들이 먼저 “여기 떡볶이 맛있대” 하면서 나한테 추천해주는 시대가 됐는데, 그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나도 한식당을 차려봤다, 그리고 망했다

여기서 좀 부끄러운 얘기를 해야겠다. 나도 그 시절에 한식당을 하나 열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타이밍이 정말 최악이었다. 너무 일찍 시작했다. 시장이 준비가 안 됐는데 나 혼자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다. 한식에 대한 인지도도 낮았고, 재료 수급도 지금처럼 편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한식”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싱가폴 외식 시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이니 K-BBQ니 하면 다들 알아듣지만, 그때는 그런 말 자체가 없었다.

결국 몇 년 못 버티고 접었다. 솔직히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돈도 잃고,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하는 생각을 참 오래 했다. 메뉴가 문제였는지, 위치가 문제였는지, 마케팅이 문제였는지, 다 곱씹어봤다. 근데 지금 와서 보면 답은 하나였다. 시기상조. 그냥 너무 일찍 뛰어든 거다. 사업이라는 게 아무리 잘해도 시장이 안 열려 있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갑자기, K가 터졌다

그러다가 몇 년 사이에 정말 급격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케이팝이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하더니, 뒤이어 K-드라마, K-무비, 그리고 K-푸드까지 완전히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다. 싱가폴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한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웬만한 몰마다 한식당 하나씩은 꼭 들어가 있다. 삼겹살집, 치킨집, 분식집, 심지어 한국식 베이커리까지. 예전엔 한식당 하나 찾으려면 발품을 팔아야 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너무 많아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솔직히 마음이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정말 기쁘다. 내가 그렇게 알리고 싶어했던 한국 음식이 이제는 싱가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으니까. 근데 다른 한편으로는 “아, 몇 년만 늦게 시작했어도”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지금 여는 한식당들은 처음부터 손님들이 한식이 뭔지 알고 찾아오는 시장에서 시작하는 거니까, 내가 겪었던 그 맨땅에 헤딩하던 고생은 안 해도 되는 거다. 타이밍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실패도 자산이더라

망하고 나서 한동안은 그냥 다 지우고 싶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실패, 그 시행착오, 그때 뭘 잘못 판단했는지, 어디서 돈이 새어나갔는지, 왜 그 자리는 안 됐는지, 메뉴 구성은 뭐가 문제였는지…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두고 있다. 지금 와서 보니까 이게 꽤 값진 기록이더라. 지금 싱가폴에서 한식당 준비하는 사람들이 겪을 시행착오의 절반은 내가 이미 겪은 것들이다.

그래서 혹시 싱가폴에서 한식당이나 한국 관련 외식업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 혹은 이쪽에 투자를 고민하고 계신 분들 있으면 편하게 연락 주셔도 좋다. 내가 뭐 대단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리스트 하나는 확실하게 드릴 수 있다. 남의 실패를 미리 알고 시작하는 것만큼 값싼 수업료도 없으니까.

싱가폴 한식당 씬이 이렇게 커진 걸 보면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대장금, 탄종파가 그 식당 두 군데 놓고 뭐 먹을지 고민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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